Jesus on Screen: the Gospel According to Movies

by H.J. Park April 14, 2017
A scene from Pier Paolo Pasolini's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

Hollywood has made movies about Jesus since the silent era. But Hollywood Jesuses are all so handsome with blue eyes like Jeffrey Hunter in King of Kings or Max Von Sydow in The Greatest Story Ever Told.  They even called Mr. Hunter ‘Malibu Jesus’.

The best movie about Jesus that I ever can imagine is Pier Paolo Pasolini’s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 (1964). This B&W film was shot on a modest budget with a cast of nonprofessionals including the main actor who played Jesus. It showed a gritty Judea populated by remarkably average-looking people. But its most striking departure from its predecessors was in its portrayal of an all-too-human Christ with a definite message for his followers.  So watch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 on this Easter Sunday. Happy Easter!

“내 양심은 신의 세계의 포로다. 따라서 나는 내가 한 말을 취소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겠다. 왜냐하면 양심에 거슬리는 것은 안전하지도 않고 기릴 일도 못 되기 때문이다. 나는 달리 어찌할 수가 없다. 이 것이 내 입장이다. 신이여 날 도우소서. 아멘!”

이 말은 지난 1521년 4월18일 찰스5세 신성로마제국 황제 주재 하에 독일의 보름스에서 열린 재판에서 자기가 한 말을 취소하라는 요구에 대해 마틴 루터가 대답한 최후 진술이다. 이어 루터는 파문당했다.

오는 16일의 부활절을 얼마 앞두고 내 친구 C가 이 말을 E메일로 보내오면서 “나는 이 말이 역경에 처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용감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을 읽을 때마다 깊이 감동 한다”고 루터의 용기를 찬양했다. 화형에 처해질 것을 각오하고 자기의 믿음을 지킨 용기야 말로 대단한 것이다.

오는 10월31일은 지난 1517년 루터가 면죄부를 팔아먹는 가톨릭을 개탄하면서 자기가 살던 색손 주의 작은 대학도시 비텐베르크의 캐슬 처치 문에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인지 5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로써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종교개혁이 시작됐다.

친구 C부부와 우리 부부는 작년 5월17일 독일여행 때 비텐베르크를 방문 했었다. 그 때 나는 캐슬 처치 안을 돌아보면서 작은 가슴으로 루터의 큰 신앙과 용기를 생각했었다.

동독의 잔영이 아직도 드리워져 있던 시골 마을 비텐베르크의 기차역에 걸린 도시 이름 표지판에는 루터슈타트(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라고 적혀 있었다. 우리가 묵은 루터호텔을 비롯해 루터 소시지와 루터 맥주잔까지 온통 루터 때문에 먹고 사는 마을이었다. 살아서는 신의 말씀으로 사람들에게 영의 양식을 제공했던 루터는 죽어서도 육의 식량 보급자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병기와 방패 되시니’라는 찬송가를 작곡하고 작사한 루터는 혁명가요 작곡가로 평소 위트 있는 논쟁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이런 위트는 비텐베르크에서 산 카드에 잘 적혀 있다. “맥주를 많이 마시는 남자는 잠을 잘 잔다. 자는 남자는 죄를 안 짓는다. 그리고 죄를 안 짓는 남자는 천국에 간다!” “아멘!”이다.

부활절을 맞아 사랑과 용서를 가르쳤던 예수에 관한 영화들을 돌아보자. 예수 넓게는 성경에 관한 영화는 무성영화 사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무성영화 시대 이런 영화를 잘 만들었던 사람이 후에 찰턴 헤스턴이 모세로 나온 ‘십계’를 감독한 세실 B. 드밀이다.

그런데 할리웃이 만든 예수영화들은 모두 예수를 금발에 미끈한 체격의 푸른 눈의 남자로 묘사했다. ‘왕 중 왕’의 제프리 헌터(말리부 예수라고 불렸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야기’의 스웨덴 배우 막스 본 시도, 마틴 스코르세지가 감독한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의 윌렘 다포 및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멜 깁슨이 감독한 ‘그리스도의 수난’(16일과 17일 뉴베벌리 시네마에서 상영) 의 짐 캐비즐 등이 그 좋은 예다.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진짜 예수는 할리웃 예수와는 거리가 멀다. 예수 시대 평균 남자 신장은 5피트 3인치, 평균 체중은 110파운드였다는 것. 그리고 예수는 금욕적 생활을 한데다 끊임없이 걸어 다니며 설교를 해 매력과는 거리가 먼 근육이 툭툭 불거진 남자로 추정하고 있다. 예수영화에 관한 책 ‘신성한 모습’을 쓴 로이 키나드와 팀 데이비스도 “푸른 눈에 백색의 길고 품이 큰 옷을 입은 유대 땅에서 온 보이스카웃이 할리웃에 의해 정형화한 예수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많은 예수영화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이탈리아의 동성애자 공산주의자였던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가 감독한 ‘마태복음’(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1964‧사진)이다. 흑백영화로 예수의 탄생에서부터 부활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묘사했는데 마태복음에 적힌 글을 그대로 대사로 쓴 엄격하고 표현력 풍부한 명작이다. 파졸리니는 요한복음은 너무 신비적이요 마가복음 저속하고 누가복음은 감상적이어서 마태복음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자기 시대의 상황을 암시적으로 영화 내용에 포함시켰다. 그가 마태복음의 내용을 그대로 대사로 쓴 이유는 “이미지로서는 도저히 예수의 신성의 시적 경지에 이를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예수 역은 당시 19세였던 경제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엔리케 이라소퀴가 맡았는데 척박하도록 꾸밈없는 얼굴이다. 나머지 역들도 비 배우들이 맡아해 영화가 매우 자연스럽다.

예수를 말하면 절로 따라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들이 예수 때문에 십자가 처형을 면한 범죄자 바라바스와 예수를 팔아먹은 유다다. ‘바라바스’라는 영화에선 앤소니 퀸이 바라바스로 나와 그의 입장에서 예수를 얘기했고 내 중고교 친구인 소설가 황석영은 중학생 때 예수의 얘기를 유다의 입장에서 설명한 ‘부활 이전’으로 교내 문예대회에서 장원을 했었다.

예수영화 외에 부활절을 맞아 TV에서 단골로 방영하는 영화가 주디 갈랜드와 프레드 애스테어가 나온 뮤지컬 ‘이스터 퍼레이드’로 오스카 음악상을 탔다. 부활절에 들을만한 클래식 곡으로는 말러의 ‘부활’ 교향곡과 멘델스존의 ‘종교개혁’ 교향곡 등이 있다. 해피 이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