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Cassics: "Citizen Kane"

by H.J. Park September 30, 2020
A scene from "Citizen Kane",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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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izen Kane' (1941) is considered “the movie of all movies”. Produced, directed, co-written, and headlined by 25-year old wunderkind Orson Welles, Citizen Kane was his first feature. It is one of the most influential movies of all time due to its technical innovations in cinematography and its circular storyline. Every shot is visually remarkable, with Welles and cinematographer Gregg Toland (who received the same billing as Welles in the opening credits) using deep focus, chiaroscuro, and unusual angles to great effect. The cinematography and composition are not only beautiful but also serve the story. 

The character of Kane was clearly modeled upon real-life media tycoon William Randolph Hearst, as the Xanadu estate is a stand-in for Hearst Castle. Recognizing the resemblance, Hearst did everything he could to suppress the film. Despite being shut out in nearly all the categories in which it was nominated, Welles and co-writer Herman J. Mankiewicz received the award for Best Original Screenplay in 1942.

25세의 ‘신동’ 오손 웰즈의 할리웃 데뷔작인 ‘시민 케인’은 수년 전 권위 있는 영국 영화협회가 144명의 비평가와 감독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역대 영화사상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선정된 불후의 명작이다. 할리웃의 기인 웰즈(1915-1985)가 미 역사의 한 괴물인 언론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1863-1951)를 모델로 만든 이 영화는 영화가 다변한 언어이며 개인적 예술적 표현의 용솟음치는 분출구라는 것을 힘차게 보여준 기념비적 작품이다.

천재 웰즈가 제작, 감독, 주연하고 각본을 쓴(허만 J. 맨키위츠와 공동 집필) 이 영화는 웰즈의 대담한 개혁정신과 실험정신이 천둥번개 치듯이 빛과 소리를 내며 창조된 작품으로 영화사상 최고 최대의 작품으로 일컬어진다.

‘시민 케인’은 일면으로는 권력과 부패의 고전적 연구서이자 또 다른 면으로는 뒤틀린 ‘아메리칸 드림’을 기이한 아름다움과 매서운 통찰력으로 묘사한 대담한 작품이다.

웰즈가 스크린에 포착한 케인의 개인적 면모나 사생활 그리고 그의 저택까지가 허스트의 그 것들과 똑 닮자 허스트는 영화 개봉 전과 후에 이 영화를 사장시키려고 자신의 언론매체를 총동원해 맹공격을 해댔었다. 옐로 저널리스트이자 실패한 정치인이요 혼외 정사자인 케인은 누가 봐도 허스트였다. 허스트는 자기 신문에 영화 광고를 못 내게 하고 필름을 소각시키려고 할리웃의 동지들을 동원해 영화의 원본 필름을 매입하려고 시도하는가 하면 자기 패거리를 시켜 당시 미 연방수사 국장이었던 에드가 J. 후버로 하여금 웰즈의 뒷조사를 시키기도 했다.

허스트의 정부 매리온 데이비스가 모델인 케인의 정부 수전(도로시 코밍고어 분)은 술에 전 서푼짜리 오페라 가수로 케인의 허영과 야망에 밀려 오페라 무대에 섰다가 참담한 실패를 한다. 허스트가 이 영화를 특별히 증오한 것은 매리온에 대한 이 같은 처참한 묘사에 분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케인이 “로즈버드”를 마지막 말로 남기고 죽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덩지와 재능이 모두 거물급이었던 웰즈를 영원히 영화 예술의 제우스로 기억하게 만들어준 작품이다. 영화는 작품, 감독, 각본 및 남우주연상 등 총 9개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으나 달랑 각본상 하나만 탔다.

‘시민 케인’은 대사와 행동을 통해서만 아니라 소품과 세트와 조명과 음악(버나드 허만) 및 스크린의 여백과 그림자와 음향 그리고 무엇보다도 카메라의 위치와 움직임과 각도의 창조적 구사를 통해서도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다. 신문기자의 취재형식을 빌어 케인의 생애 전모를 캐어나가는 식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의 위대성은 웰즈의 비상한 연출과 변화무쌍한 연기 그리고 그와 맨키위츠의 실팍하고 뛰어난 각본 및 그렉 톨랜드의 딥 포커스 기법을 사용한 생생한 촬영 등이 혼연일체가 되어 만들어진 명작이다.

자신의 권력과 과다한 야망 때문에 파괴된 이 거인에 관한 고전적 비극이 주는 교훈은 성공과 권력과 부가 사랑과 평안을 대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 주고 산 모든 것을 잃고 홀로 죽으면서 케인은 마지막 말로 어렸을 때 자기가 타던 썰매의 이름인 ‘로즈버드’를 토해낸 것이다.

셰익스피어 해석의 대가이기도 했던 웰즈는 이 영화로 마치 제왕처럼 뉴욕으로부터 할리웃에 도착했으나 그의 두 번째 명작인 ‘위대한 앰버슨 가족’(The Magnificent Ambersons)으로 과격분자라는 낙인이 찍혀 할리웃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추방을 당한 뒤 자신의 예술성을 만개시키지 못한 사람이다. 그는 그릇이 너무 커 할리웃이 받아들이지 못한 비극적 거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