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ering Doris Day

by H.J. Park May 14, 2019
Singer and actress Doris Day

Doris Day, actress, singer, and animal advocate died on May 13th at the age of 97.  She was a talented entertainer who could act nicely in a romantic comedy and sang with a sweet and sultry voice. But most of all she was known an America’s sweetheart.  Of all her songs, the most famous one is ‘Que Sera, Sera’ which she sang in the Alfred Hitchcock thriller, The Man Who Knew Too Much.  The song won an Academy Award. Her other Academy Award-winning song was ‘Secret Love’ which she sang in Calamity Jane. Her voice was behind several hits, including ‘Sentimental Journey’. But my personal favorite is ‘It’s Magic’.

She was especially adept at romantic comedies. The genre was a perfect match with her wholesome image. Her best partner in the genre was Rock Hudson. They made a beautiful and funny couple in Pillow Talk, Lover Come Back and Send Me No Flowers.  It was an impeccable match.  She retired in the early 1970s, and from then on became well-known as an animal advocate.

Doris Day was one of the most favorite stars of the Hollywood Foreign Press Association. Besides Cecil B. deMille Award, she received the World Film Favorite awards three times.   Doris Day was an American national treasure.  She took a Sentimental Journey to heaven.  God bless her soul!

나는 아직도 내가 중학생 때 서울 남영동에 있던 성남극장에서 본 히치콕의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The Man Who Knew Too Much)에서 도리스 데이가 부르는 노래 ‘케이 세라 세라’(Que sera, sera)를 들으면서 노래가 참 좋구나하고 감탄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데이가 제임스 스튜어트의 아내로 나온 이 영화는 스릴러의 거장 히치콕의 영화치곤 타작이다.

노래의 원제는 ‘왓에버 윌 비, 윌 비’(Whatever Will Be, Will Be)이지만 ‘세상만사 다 필연적이다’라는 뜻을 지닌 ‘케이 세라 세라’로 더 잘 알려진 이 노래는 데이의 상표가 된 곡으로 오스카 주제가상을 탔다. 영화로 소개된 후 한국에서도 크게 유행했는데 ‘될 대로 되라’하면서 신세 한탄하는 사람들이 후렴처럼 빌려 쓰기도 했다.

배우이자 가수요 동물애호가였던 데이가 13일 캘리포니아주 카멜에서 97세로 타계했다. 데이하면 연상되는 모습이 깨끗하고 단정하고 착한 이웃집 아주머니의 그 것이다. 배우와 가수로서 데이의 인기가 절정을 이룬 1950년대 태평성대를 누리던 아이젠하워 시대에 딱 맞는 사람이었다. 데이는 이렇게 현모양처 형이면서도 야릇한 성적매력을 발산했는데 그의 목소리도 감칠맛 나게 달콤하면서도 어딘가 관능적이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가수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한 데이는 연기보다는 노래가 더 낫다는 생각이다. 데이의 연기는 무던한 편으로 그가 나온 많은 영화들이 로맨틱 코미디여서 보기엔 즐거우나 탁월한 연기력을 발휘할 장르가 아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생애 39편의 영화에 나와 록 허드슨과 공연한 로맨틱 코미디 ‘필로 토크’(Pillow Talk)로 딱 한번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는데 데이와 허드슨은 이 영화 외에도 또 다른 로맨틱 코미디 ‘러버 컴백’(Lover Come Back)과 ‘센드 미 노 플라워스’(Send Me No Flowers) 등에서 좋은 콤비를 이뤘었다.

데이가 나온 또 다른 로맨틱 코미디들로는 클라크 게이블과 공연한 ‘티처스 펫’(Teacher's Pet), 리처드 위드마크와 공연한 ‘터널 오브 러브’(The Tunnel of Love), 데이빗 니븐과 공연한 ‘플리즈 돈 이트 더 데이지’(Please Don't Eat the Daisy) 및 제임스 가너와 공연한 ‘무버 오버, 달링’(Move Over, Darling) 등이 있다. 데이의 마지막 영화는 역시 로맨틱 코미디로 브라이언 키스와 공연한 ‘위드 식스 유 겟 에그롤’(With Six You Get Eggroll)이다. 이들은 다 그저 기분 좋고 따스한 무공해 영화들이다.

그게 그거 같은 이런 영화들을 제치고 데이가 십분 연기력을 발휘한 영화가 웨스턴 뮤지컬 ‘컬래미티 제인’(Calamity Jane)이다. 데이는 여기서 서부시대 실제 인물이었던 총 잘 쏘는 괄괄한 남자 스타일의 여자로 나와 맹렬한 연기를 한다. 여기서 데이가 부른 주제가 ‘시크릿 러브’(Secret Love)도 오스카 주제가상을 탔는데 이 영화는 데이가 가장 좋아하는 자기 작품. 데이의 상대역인 전설적인 서부의 총잡이 와일드 빌 히칵으로는 하워드 킬이 나온다.

그리고 뮤지컬 드라마 ‘러브 미 오어 리브 미’(Love Me or Leave Me)에서도 1920년대 시카고의 실제 갱스터였던 마틴 스나이더(제임스 캐그니)의 댄서 연인 루스 에팅으로 나와 호연했다. 또 스릴러 ‘미드나잇 레이스’(Midnight Lace)에서는 스토커에 시달리는 부잣집 아내(남편 역은 렉스 해리슨)로 나와 자주 비명을 질러대면서 색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데이는 ‘케이 세라 세라’와 ‘시크릿 러브’ 외에도 수많은 히트곡들을 냈는데 그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센티멘탈 저니’(Sentimental Journey)와 ‘이츠 매직’(It's Magic) 그리고 ‘바이 더 라이트 오브 더 실버리 문’(By the Light of the Silvery Moon)이다. ‘센티멘탈 저니’는 1945년에 나와 2차대전 참전 미군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데이는 생애 뒤 늦게 2011년 자신의 히트곡 모음집 ‘마이 하트’(My Heart)를 출반했는데 이 음반은 나도 갖고 있다.

데이는 이와 같은 해 LA영화비평가협회에 의해 생애업적상 수상자로 뽑혔다. 그러나 2012년 1월에 열린 시상식만찬에는 참석치 않고 대신 집에서 전화로 보낸 고맙다는 메시지를 들었던기억이 난다. 데이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매우 사랑한 스타였다. 생애업적상인 세실 B. 드밀상을 비롯해 무려 다섯 차례나 인기상을 탔다.

온화하고 상냥한 모습이어서 가정생활도 평탄할 것 같은 데이는 뜻 밖에도 결혼생활은 불행했다. 모두 네 차례 결혼했는데 세 번째 남편 마티 멜처는 데이가 벌어놓은 돈 2,000만달러를 아내 몰래 투자해 탕진하고 500,000달러의 빚까지 남기고 죽었다. TV출연을 싫어하는 데이가 1968년 CBS의 ‘도리스 데이 쇼“의 호스트를 수락한 까닭도 파산에서 벗어나고 죽은 남편의 동업자를 상대로 제기할 소송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데이는 1970년대 초 은퇴해 카멜에서 동물애호가로 활동했다.

신시내티에서 출생한 도리스 데이(본명 도리스 카펠하프)는 처음에 10대 때부터 재능을 보인 댄서로 활동하려고 했으나 교통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쳐 포기했다. 이어 래디오쇼에서 노래하는 데이의 음성을 들은 신시내티의 밴드리더 바니 랩이 데이를 자기 나이트클럽 쇼에 출연시키면서 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데이는 생애 총 30곡의 탑20를 기록했다. 미국의 국보급 존재였던 데이는 이제 저 세상으로 ‘센티멘탈 저니’를 떠났다. 페어웰 도리스!